34살... 중고신입이 되다

2020. 8. 24. 16:33일상다반사/노동의 기쁨

34살......

나는 중고 신입이 되었다.

 

24살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와 일을 시작한 이래, 이곳은 나의 6번째 직장이 되었다.

 

6번의 이직을 하면서, 나는 5개의 서로 다른 업계에 종사하게 됐다.

 

그러니까, 이력서를 펼치면 칸을 채울 내용은 많지만,

 

뭐 하나 특별하게 내세울 만큼 오래 일했던 적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물론, 졸업 후 일한 직장은 4년 정도 일을 했었지만,

그 후 나의 20대를 이렇게 버릴 수 없다며 

미국으로 떠나 버리게 됐고,

영혼의 단짝과 결혼을 했고,

 

그렇게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고 나니, 

 

나는 말로만 듣던,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좁은 교집합 안에 속해 있었다.

 

그렇다.

나는 30대 기혼 가임기 여성이었다.

 

취업사이트를 다 뒤져봐도 내가 일했던 직종은 나와 있질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해보고자 해도, 경력이 없으면 20대라는 나이가 필요했다.  

 

수십 통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자존심은 앞주머니에 넣어두고 아는 지인들에게 슬쩍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서류를 낸 한국/일본계 기업들에서는

전화를 걸어와 내가 얼마나 외국어를 잘하는지, 내 업무 능력이 어떻게 되는지 체크도 하기 전에,

결혼을 진짜 한건 지, 아이는 없는지 대뜸 물은 후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눈물과 치욕과 좌절과 우울로 뒤섞였던 나의 재취업 활동을 통해

어찌어찌 취업이 되었으나, 그 또한 뭐가 뒤틀려버린 덕에,

몇 번의 이직을 더 하고는 

 

나는 다시 중고 신입이 되었다.

 

디지털 마케팅 쪽에는 전무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34살의 가임기 기혼 여성이, 

 

영국계 기업에 취업이 된 것이다. 

 

두 번의 인터뷰와 한 번의 업무 테스트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내 사생활, 심지어 나이에 대한 질문도 받은 적이 없다.

 

사실은 이게 당연한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수없이 나 사생활을 캐묻던 그 회사들에게 빅엿을 선사하고 싶어 졌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신입사원 아닌 신입사원이 되어,

오늘도 노동의 기쁨을 향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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